대자연이 연출하는 정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다 불현듯 생각나는 얼굴이 붉게 물든 운해의 수평선 위에 떠오른다.
풍랑을 헤치고 점점 다가오면서 자꾸만 커지는 얼굴.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삶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언제나 가슴 한구석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너무 보고 싶다.’
보고픔,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머릿속을 온통 하얗게 만들며 피안의 저편 언덕 위에 오래된 기억의 창고 속에서도, 언제나 밝고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
추스를 수 없는 마음에 눈물이 나도록 시리고 아픈 이름도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구름이 만들어 내는 망망대해를 향해 힘껏 소리쳐 불러본다.
하얀 구름 속 멀리 둥실 떠 있는 도봉산과 햇살 받아 황금 돌산으로 변한 인수봉에 부딪혀 다시 돌아와 귀를 울렸다.
가슴 속 심연의 깊은 곳에서 절박한 바람이 솟구쳐 오르면서, 어찌할 수 없는 마음에 파도가 출렁이는 넓게 펼쳐진 운해를 그리움과 애절함을 가득 싣고 힘차게 노를 젓는다.
“이제는 만나러 가야지!”
(13-14쪽, 「백운대 일출」)
그 많은 수녀님들이 움직이는데도 거의 느낄 수 없는 아주 작은 소리만이 귀에 닿고, 마치 형체는 있는데 실체가 없는 물체가 움직이듯 꼭 필요한 절제된 움직임만으로 걸으니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직은 누리를 짙게 감싸고 있는 어둠과 어우러져 경당을 신비스러운 곳으로 만들며 거룩한 침묵만이 가득 차 있다.
곧이어,
고요함을 밝히는 촛불이 중앙에 있는 제대를 향해 길게 늘어선 수녀님들이 아주 고운 한목소리로 음을 맞춰 내는 기도소리가 천상의 소리인 양 아름답게 울려 퍼지면서, 경당을 더욱 엄숙하고 장엄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드리는 미사의 ‘시편’의 한 음절이 끝날 때마다, 하나님께 영광송을 바치려 일어서서 고개 숙여 절하는 모습은 범접할 수 없는 신비함으로 승화되었다.
(153쪽, 「마리아 봉쇄수녀원」)
자기 자신을 냉정히 분석해 보면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감히 내세울 수 있는 특별한 장점도 없었고 좋은 학벌을 지닌 것도 아니고 더욱이 조직 내에서 적극 밀어주는 상급자도 없었다.
그래도 신기하게도 위기라고 생각하고 고민을 하는 일이 발생하면 언제나 마음먹었던 제일 좋은 방향으로 해결이 되곤 했다.
IMF 때나 금융위기 때에는 당연히 은행을 나와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동기 중 혼자만 남았고 그것도 더욱 좋은 부서로 직급도 한 계급이 높아지는 인사발령을 받았었다.
친구들은 무슨 대단한 백그라운드가 있는 양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집안이나 주변에 힘을 써 줄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애써 자신이 열심히 해서 직장 내에서 점수를 많이 따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자기 암시를 주었지만, 자신을 아무리 돌아보아도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그 무언가를 이렇게 정의했다.
‘보이지 않는 힘’.
(226쪽, 「보이지 않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