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몇 시간 전의 기억을 되살려내려 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공유했던 또 하나의 벌거벗은 몸뚱어리와 내 안을 채웠던 그것이 빠져나가며 남겨놓은 찌꺼기들이 이불 안을 덥히고 있었다. 이불 밑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용기를 내 눈을 떴다. (감았던 눈을 뜨는 데 용기가 필요했던 적이 있었던가?) 오른쪽 눈꼬리에서 관자놀이 부근까지 길쭉한 가시가 박혀있는 듯했다. 독한 약 기운 때문에 (과음 탓이 아니라) 원치 않는 잠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무거워진 몸을 일으켰다. 순간 “끙” 하고 신음소리를 낸 건, 누군가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잠을 깬 곳이 평소에 잠을 깨던 자리가 아니며 혼자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누구를 의식했단 말인가?)
침대 머리맡에 상체를 기대고 앉아 제일 먼저 엄지손톱을 확인했다. 어릴 적처럼 짧지 않은 손톱은 이로 깨문 흔적 없이 말끔했다. 멀쩡한 엄지손톱이 내 앞에 펼쳐진 낯선 풍경을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침착하게 정면의 벽 전체를 덮다시피 한 커다란 거울을 바라볼 수 있었다. 거울은 또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