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에 와서
마루에 앉았다.
어머니 아버지 앉았던
그 마루에…
아버지 어머니 숨소리가 들리는 듯
아버지 문패도
할아버지 문패도
밤나무 향나무 은행나무도
아궁이 무쇠솥만
덩그러니 걸려 있고
돌절구 옛 임을 기다리네.
- 「고향집」 15페이지
오늘따라 세찬 바람이 분다
세상이 시끄럽다
누가 주고 누가 받았는지
언제 끝날 일인지
핸드폰 열어 보기도 겁난다
책을 보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앉아 있어도 아프고 서도 아프다
참을 만큼 참다 마취통증의학과에 갔다
엎드려 시술대에 오른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마취하지 않은 채 가느다란 관이 서서히 들어간다
다리가 터질 듯이 아프다
- 「어른도 운다」 78페이지
떠나기 전 한마디 남기고 싶어
오늘도 책상에 앉았다
누군가
단풍의 절정은 짧고
낙엽의 낙하는 길다고 했다
내 삶은 짧지만
소중한 순간들이었으면 한다
나이 들면
신체의 모든 장기가 고장 나기 마련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암이란 한마디
슬프고, 괴롭고, 아프다.
고사목 같은 삶에도
아직 할 일이 있어 다행이다
부르면 가야지.
- 「부르면 가야지」 70페이지
꽃은 나에게 기쁨을 주고
지는 낙엽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마지막 달력은 나이를 더한다.
친구를 만나도 밥만 먹고 헤어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빨리도 간다.
눈이 어두워도 귀가 들리지 않아도
무릎이 아파도 백발이 되어도
서러워 말자.
아까운 시간과 머물지 못하는 나이는
순리대로 흘러간다.
- 「순리대로」 117페이지
저녁노을은 붉고 아름답다
바람이 불어도 개나리는 핀다
찬 서리 내려도 귀뚜라미는 운다
달팽이 종일 걸어도 거기가 거기
어제도 내 삶 오늘도 내 삶
- 「삶」 전문
오래 살다 보니 얼굴도 닮아 가고
음식 맛도 매운맛 단맛 쓴맛 닮아 가네
웃는 모습 잠자는 모습 닮아 가네
빨리 먹는 모습 어지르는 모습 닮아 가네
주름살 하얀 서릿발도 닮아 가네
소꿉친구처럼 닮아 가네
- 「닮아 가네」 107페이지
거울을 보고 또 본다
젊어 보일 때도
늙어 보일 때도
나와 함께 늙어 가는
내 얼굴
- 「내 얼굴」 105페이지
불타는 가을 산
단풍이 춤을 추는 가을 산
실개울 피라미도
춤을 추는 가을 산
바람도 쉬어 가는 가을 산
구름도 쉬어 가는 가을 산
오색찬란한 가을 산
기꺼이 깊어 가니
아름다운 가을 산
- 「가을 산」 137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