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산악인 누구누구가 어느 산을 정복했다느니 하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 누구에게도 정복당한 적이 없다. 인간은 아무리 높은 산 정상에 올라도 땅에 딱 붙어있는 미약한 존재일 뿐이다.
19쪽, 「일상을 예술처럼」
몸과 마음이 일치하기를 원하지만 몸은 여기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내 의지와는 달리 지구를 몇 바퀴 돌 만큼 온갖 세상사에 간섭 받아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나의 마음과 몸이 함께 있도록 불러들여 스스로의 의지로 자존감을 높여 나가야겠다. 이 세상에서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할 사람은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30쪽, 「일상을 예술처럼」
그 슬픔이 오죽했으면 훗날 아내를 잃은 제자 오경석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드러내며, “나도 아내를 잃어봐서 아는데 그나마 마음을 잡으려면 종려나무 삿갓을 쓰고 오동나무 나막신을 신고 산색을 보며 강물 소리를 들으며 방랑하는 것 이상이 없다.”는 말로 위로했으랴.
68쪽, 「편지로 꽃피운 사랑과 예술」
“밤에 자다가 처마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서 농사를 망치게 될까 걱정하느라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늦게야 비로소 비가 그쳤으니 기뻐 펄쩍 뛸 지경이다. 간밤에 잘잤는가?”라며 보낸 편지에서 인간적 군주의 면모를 볼 수 있다.
102쪽, 「편지로 꽃피운 사랑과 예술」
관광지마다 어지러이 얼룩덜룩, 들쑥날쑥 가로세로로 얽혀 있는 대문짝만 한 식당 간판과, 진입로에 진을 치고 있는 장사치들, 거기서 발생하는 소음 등이 싫어서 나는 국내 여행을 꺼린다. 하지만 오랜 습관이 된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싫다 하면서도 막상 고즈넉이 유적지만 마주하게 된다면 서운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124쪽, 「만 가지 이름의 우물」
혼자 살게 된 후 침묵과 고독 속에서 시나브로 말을 아낀 지가 6년째다. 마치 가진 돈이 점점 줄어들면서 꼭 필요한 것에만 쓰게 되는 검약 습관이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었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는 별생각 없이 돈을 쓰고 불필요한 것들을 사들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듯이, 말할 상대나 가족이 있을 때는 평소의 언어 습관을 알기 어렵다. 돈을 펑펑 쓰듯이, 말을 펑펑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134쪽, 「만 가지 이름의 우물」
권좌는 쉽게 잊히지만 문학은 세월의 흐름 속에도 계속하여 세인을 찾아오는 것, 그것이 예술과 문학의 힘이리라. 이제 나는 운초의 무덤에서 발길을 돌려 광덕산 정상으로 향한다. 가다가 다시금 고개를 돌리는 나에게, 운초는 부용꽃 같은 미소를 띠우면서 손을 흔든다. 그 향기로운 환영을 가슴 속에 고이 접어 넣으며, 나는 자세를 바로 잡고 광덕산 위로, 위로 오른다.
170쪽, 「내가 만난 여인들」
이렇게 세 가지 한에 가슴이 멍들어가던 초희는 두 아이를 잃자, 27살의 젊은 나이에 그나마 시를 통하여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 세상에 대한 끈을 놓아버린다. 그녀의 슬픔과 한이 결국 그녀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161쪽, 「내가 만난 여인들」
정자는 비록 조선시대의 작은 별서 공간이었지만, 그것은 ‘분채의 미학’과 ‘극소 공간’이 현대건축에서도 필요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217쪽, 「건축은 삶이다」
좋은 광장은 도시민에게‘안식’을 주어야 한다. 물론 광장은 때에 따라 장터가 되기도 하고 문화행사장이 되기도 하며 의식이나 군중집회 장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행사가 끝난 후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 왔을 때는 언제나 도시민에게 다시 안식을 줄 수 있어야 진정 사랑받는 광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47쪽, 「건축은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