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과 분진 때로는 악취까지 풍기는 영세 공장 중심의 도심 제조업이 왜 서울 도심에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극히 본질적인 의문이 든다. 도심의 영세 공장은 무엇이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이들이 언제부터 이 도심을 차지하게 되었고 지금도 왜 비싼 도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에 대한 서울시의 정책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의 효과나 결실은 어떠했는가.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이들에 대한 미래 전략은 어떠해야 하는가. (15쪽)
조선 시대에서부터 계층별 거주 지역 분리, 시전과 수공업장과의 결합, 관청수공업장과의 근접성 유지 등에서 비롯된 수공업장의 밀집이 도심, 특히 중구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공장의 도심 밀집 양상은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인들의 밀집 거주 지역과의 인접성, 업무 기능과의 근접성 등으로 강화되어 갔다. 그것도 단순히 제조업의 집중이 아니라 업종별, 규모별로 차별적인 집중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산업화 이후에는 도심 영세제조업체들은 도심의 제 기능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주문업체의 확보와 종사자의 접근성 확보가 용이한 공간적 중심, 즉 도심부에로의 집중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도심 내에서도 특정 지역에 영세공장이 집중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생산 연계망에 의존하는 생산 방식과 대면 접촉에 의한 거래로 인해 공간적으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에 기인한 것이다. (52쪽)
세운 일대가 도심 영세 공장에는 매력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세운 일대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대중교통을 통한 접근성과 풍부한 업체에 의한 거래비용 절감으로 드러났다. 반면에 고숙련 종사자의 고령화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고 있었다. 또 고가의 임대료와 건물 및 시설의 노후화도 큰 단점이라고 입을 모았고 물리적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따른 종사자들의 구체적인 개선 희망 사항은 고객의 접근성 개선, 사업장 면적 확충, 그리고 화장실 냉난방 등의 기반 시설 확충으로 나타났다.
세운 일대의 물리적 환경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방식은 전면 철거를 전제로 하는 재정비촉진사업은 아니었다. 업종을 불문하고 재정비계획을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55~6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재정비촉진사업을 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존재하지만, 그렇더라도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는 정비하면서, 산업 종사자들을 배제하지 않는 사업계획이 되어야 한다는 태도는 견고하였다. (138쪽)
프랑스 파리의 르 샹카트르(Le Centquatre)에서는 방치되었던 장례식장을 활용하여 다양한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실리콘 앨리(Silicon Alley)에서는 전통적인 소규모 제조업 중심에서 멀티미디어 산업과 콘텐츠 산업을 선도하는 신산업 공간으로 재편하고 있다.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와 달리 뉴미디어, 출판, 광고 등이 결합한 신산업 공간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다. 소규모로 전문화된 제조업체들이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세운 일대에 문화예술의 무늬를 입히자. 문화예술을 결합하여 특성 있는 신산업 공간으로 재탄생시켜 보자. (1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