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낮은 자리에
하나도 빠짐없이 주려고
촘촘하게 날실 씨실을 엮어서
온 누리 뿌려 주니
곡식과 과일이 여물고
내 안에도 둥근 달이 자란다
가을 햇살은 혁명이다
익은 과일이 꽃보다 예쁘다
햇살을 품은 나뭇잎은
떠날 준비를 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가볍게 발끝에 와 닿는 낙엽을 보며
내 삶도 겸허해진다
가을 햇살과 함께 걸어가면
그만하면 괜찮다
그만하면 모두 참 따뜻했다
_「가을 햇살」 전문
무수한 만유 중에 근본적으로 생명은 자연 속에서 즉 햇살과 꽃, 나뭇잎, 바람 등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 온 누리에 뿌려 주기도 하고 그리하여 햇살과 둥근달은 혁명이 되어 낙엽을 만들게 하다가도 사람과 자연의 통로에서 영혼처럼 사라지고 또 다른 계절로 와서는 소멸하곤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지나갈 즈음, 음영이 짙어졌다 옅어졌다 하는 걸 느끼면서 시인의 정서도 겸허해지고 사유의 훈련으로 준비된 인식은 늘 따뜻함으로 발전한다.
우리의 이성은 본래 개인의 판단을 종합하여 객관화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기에 보편적인 것을 찾으려고 하면 여기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자연의 순리 속에서 희망과 긍정을 배우며 ‘자연은 내 스승이자 위로의 에너지를 주는 원천’이라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처럼 균형을 잃지 않는 자연주의 힐링 시가 많았으면 한다. 팬데믹으로 힘든 세상에서도 이 또한 시간이 가면 지나가리라던 긍정과 감사의 미학을 조율해 본다. (119-1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