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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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은 청초한 모양과 그윽한 향기로 고고한 기품을 자랑한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매란국죽(梅蘭菊竹)을 사군자(四君子)로 칭하며 절개의 상징으로 대접했다. 매화는 겨울을 이겨 제일 먼저 피는 선구자의 모습을, 난초는 깊은 수림에 홀로 있어도 그 향을 잃지 않는 고고함으로, 국화는 늦은 가을 첫추위와 싸우는 비장함으로, 대나무는 혹한에도 푸른 잎을 간직하는 충직을 상징했다. 하지만 난을 좋아하는 이들은 소나무엔 향기가 적고, 대나무엔 꽃이 없고, 매화는 꽃이 피면 잎이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결국 꽃과 잎, 향기를 모두 갖춘 것은 난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군자의 꽃이라고 말이다.
난 배양이 손에 익자 나는 각종 경연대회에도 출품했다. 엽예 대상, 최우수상, 경기도지사 상 등을 받았고, 상금과 상패도 꽤 받았다. 출품을 하면 보통 난인(蘭人)들은 자신의 난에 이름을 짓는다. 시인 김춘수는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는데 난을 키우는 사람들은 이 시구를 체감한다. 난을 얼마나 사랑하면 이름을 지어 독립된 반려자로 대접하겠는가?
내가 지금까지 이름을 지어 준 난은 세 종 정도 되는데 이름은 희광, 애심, 정동이다. 희광은 나와 아들의 이름을 땄고, 애심은 우리 아내의 이름에서, 그리고 정동은 내 회사이름에서 땄다.
각종 난 전시회에서 수상하고 월간 『난과 생활』 등의 잡지에도 실리다 보니 난 키우는 재미는 더욱 쏠쏠해졌다. 지금까지 분재, 수석, 낚시, 골동품, 우표 수집 등등 접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취미를 거쳤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나에겐 난이 죽을 때까지의 취미로 자리매김했다. 고민이 있을 때 난실에 들어가면 모든 시름이 잊힌다.
_ [차(茶)는 식었지만, 난향(蘭香)은 남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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