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빗줄기는 매미들
울음보를 묶어놓고
입추를 넘어가는 고갯마루 아래
맥문동 마을
서늘한 보랏빛 꽃이 피는
맥문동 마을의 밤으로
가을을 찬미하며 풀벌레며
귀뚜라미 노래가 찾아들 거다
태어나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엄마든 곁에 있는 누군가의 손을 잡히던 것이었으니, 저마다 차이는 있지만 근 이십 년이나 부모 또는 곁에 있는 누군가의 그늘 속에서 살아야 했던 거네요.
다들 저 잘난 듯 살아가지만 어찌 보면 다들 누군가를, 무언가를 기대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절대적인 신이든 마음의 평안을 갈구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 (21~22쪽)
누구시더라 얀마 나 돼지감자야 건네준 명함에는
돼지감자가 무색하게 대표이사였다
그를 만나고 돌아서던 길
돼지감자꽃 뚱딴지같이
노란 꽃잎에 가을햇살을 흔들며
큰 키가 멀대같이 서 있었다
(중략) 오랜 친구를 만나서도 자신의 부끄러웠던 과거의 별명을 편하게 노출할 정도로 여유로운 친구의 모습이 가을볕을 받는 꽃처럼 행복해 보이네요. 척박한 곳에 자라지만 예쁘게 피어나는 뚱딴지꽃처럼요.(87~88쪽)
가을바람에 떨어져 구르던
햇밤을 주워 온 길에
동무가 딸려 보낸 애호박 셋
가을바람을 불러들이고 싶었던가
숨겨있던 채반도 모처럼 할 일을
찾아낸 듯 가을바람이 반가웠다
채반이란 용기는 예전에는 집집마다 나물이며 곡식을 말리던 것으로 싸리나무나 대나무 껍질을 엮어 만든 것이었지요.
(중략)
가을엔 거둔 곡식이며 묵나물을 만들기 위해 채반은 쉴 틈이 없었을 거여요.(112~113쪽)
달이 기다림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나이를 더할수록, 가을이 깊어질수록 더 자주 달을 마주쳤으면 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생기는 게 새삼스러웠지요. 어느 날은 볼 수 없다가 문득 서쪽 하늘에 초승달로 나타나듯 달은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멀리에 있습니다.
달의 모양에 따라서도 보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서도 느낌은 다다를 것은 어쩔 것인가요. 둥근 보름달로 오면 그 충만함으로 마음속의 소망을 전해보고 싶은 마음의 여유를 갖기도 하지만 초승달이나 그믐달을 보면서 그런 마음 대신 애틋함과 발을 딛고 사는 이 지상이 전부가 아닌 끝을 모르는 우주 속의 일원이라는 것을 생각하게도 합니다.(170쪽)
건장에 말렸던 파래 섞인 푸릇한
이파리들에 바닷내음이 펄럭이고
들기름 바른 윤기 흐르는 해우를
화롯불에서 구어 내던 그 맛이었을 라나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오봉밥상 그 시간처럼
해우라는 말은 처음 들어요. 여고시절 바닷가에 살았던 친구가 겨울방학이 되면 김을 덕장에 붙이느라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요.
김이라는 말이 김을 처음 식자재로 만든 이의 성이라는데, 김보 다는 해의, 해우라는 말이 정감이 가네요.(210~2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