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시대를 역행하는 미학,
네 줄 시편에 담아내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의 혁신으로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의 발전 속도는 과잉생산이 인간 노동과 생활을 위협할 정도로 급속하고, 그 추세를 따라잡으려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매우 바빠졌다. 느리게 세상의 풍경을 관조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부족해진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현대인의 정서불안은 온기 없는 기계화만 좇는 데서 비롯된다. 친구 간의 정담, 이웃 사이의 얼굴을 맞댄 대화가 상실된 사회는 혼자인 개인의 외로움을 증폭시킨다. 호흡 긴 문장을 읽으며 사색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도 퇴보하고 있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닌가, 사고력이 떨어지면 인성의 본질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고는 창의력의 기반이며 존재를 부각시키는 원동력이다.
예부터 문학은 사람 냄새 나는 사회상을 그리며 글 읽는 심정들을 어루만져 줬다. 인심이 삭막해진 오늘날에도 문학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나 예전만은 못하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이동 중이나 자투리 시간에든 간편하게 빨리 읽히는 짧은 문장을 선호하는 듯하다. 전체 시편이 4행짜리 시로 이루어진 시집 『푸른 영혼의 지혜』는 짧은 독서, 짧은 생각, 짧은 문장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의 제공이다. 인생론 설파도 고담준론도 아니다. 그저 시 읽기다.
쉼 없이 달리는 세월(시간)은 유한의 인생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인생들이 어떻게 살든 끊임없는 침묵으로 세대교체를 이어나갈 뿐이다. 그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이 때를 맞추려 날짜를 정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시간에는 “설정은 없다 / 가슴을 연 내가 정할뿐이다”(<눈을 감고> 전문)라고 노래한다.
“어려 적 친구 / 사십 대에 두 번 봤을 뿐 / 이십여 [년]만의 전화로 / 친누나 찾는 일 도와달라 한다.”(<잊었던 친구> 전문) 누님은 왜 실종되었을까. 오래도록 교유가 없던 어린 시절의 친구에게까지 전화를 걸어야 했던 사연은 무엇일까. 많은 이야기를 품고도 단 네 줄만 말하고 입을 닫는다. 다급한 세상에 발맞추던 사람들의 걸음을 절로 늦춘다.
감상을 위해 특별히 마련해 둔 여백의 선과 면만큼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독자 자신의 글과 시, 지혜로운 삶을 써내려가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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