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성(相性)’
오목계의 재미있는 화두 중 하나이다.
선수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기풍을 가지고 있으며 장단점도 다르기에 서로 간의 상성과 유불 리가 존재한다.(...중략)
반면 김병준 기사와는 나의 상성이 좋지 않았다.
나의 오목을 비교적 사정거리가 긴 창에 비유한다면 김 6단의 그것은 간격은 조금 짧지만 보다 정교한 검과 같았다. 내가 간격을 더 벌리려는 것을 허용치 않고 그의 사정거리 안에서 쿡쿡 찔러댔다.
하지만 완벽할 것 같았던 김 6단도 박정호 7단에게는 종종 잡혔다.
뒤 없이 맞붙어서 돌주먹을 휘두르는 박 7단에게 강펀치를 자주 허용했다.
이러한 관계는 마치 ‘가위바위보’와 같아서 절대강자가 없던 당시에는 서로 간에 물고 물리는 현상이 종종 나타났다.(...중략)
나는 박 7단이 김병준 6단을 이겼던 장면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나의 상성이 김병준 기사에게 약하다면 박 7단처럼 둬보는 건 어떨까?’
그 경기에서 난 함정을 팠고, 긴 창 대신 방패와 단검을 손에 쥐었다.
박 7단과 같은 돌주먹은 없었지만 단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40쪽)
Poker Face
무표정한 얼굴, 마음의 동요를 표정에 나타내지 않는 얼굴 등의 의미를 지닌 단어다.
나는 국내대회에서 이 선수와 총 다섯 번을 만났는데 늘 이런 강점 때문에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었다.(...중략)
이쯤 되면 눈치 챈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한태호 4단이다. (135쪽)
국내에서의 연속 우승으로 기세가 좋았지만 성적에 대한 부담도 상당했기에 필자에게는 큰 도전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월드챔피언쉽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전개, 그리고...
시작은 좋지 못했다. 1라운드부터 하위권 선수를 상대로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했다. 초반에 상대를 얕봤던 부분도 있었고, 중반에 승리할 수 있던 상황에서 20분 가까이 시간을 쓰고도 마무리 짓지 못했던 것이 패인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경기였고 큰 실수는 없었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다음 경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차분히, 그리고 즐기는 마음으로 한 대국씩 두어가다 보니 어느새 4연승을 달리며 ‘카미아 슌스케’ 명인과 마지막 라운드에서 맞붙게 되었다. (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