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이 미 대륙에 상륙한 날로부터 인디언들에게 정의로운 심판은 존재하지 않았다. 체로키 같은 부족은 적극적으로 백인의 문물을 받아들여 대규모 농업을 영위하고(이들은 심지어 수천 명의 흑인 노예까지 부렸다), 헌법과 법원과 의회 시스템을 갖춘 국가를 건설했으며, 위대한 학자 세쿼이아는 우리의 훈민정음과 같은 체로키 문자까지 만들어 사용했지만, 순식간에 자신들의 영토를 빼앗기고 수천 킬로 떨어진 오클라호마의 인디언 구역으로 쫓겨나야 했다(한겨울에 진행된 이 눈물의 이동 과정에서 전 부족의 4분의 1이 추위, 질병, 굶주림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들어가는 말 / 6페이지)
인디언 이야기는 세계 최강국이 된 지금의 미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이야기 뒷면이다. 인디언 역사를 찾아가는 과정은 내게는 마치 까도 까도 끝없이 나오는 양파 껍질과 같았다(현존하는 500여 부족의 수만큼이나 그 이야기도 많고 길다). 오랜 시간 책으로 접하고 이해한 내용을 기회가 되면 한 번쯤 직접 찾아가 눈으로 몸으로 보고 느끼고 싶었다. 수천 년의 흔적을, 그들이 빼앗긴 터전을, 그리고 그들의 지금 모습을. (들어가는 말 / 6페이지)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는 어쩌면 콜럼버스에게 대단한 행운일 수 있다. 만일 아메리카 대륙이 없이 대서양이 바로 태평양으로 연결되었다면, 콜럼버스는 아시아에 도달하기 전에 식량 부족으로 굶어 죽었거나(그는 21일간의 항해로 아시아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선원들의 반발로 배를 돌려야 했을 것이다. 선원들은 항해가 4주를 넘어서면서 극도의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보면, 콜럼버스는 대단히 운이 좋은 사람이었고, 선각자로 기억되기보다는 무모할 정도로 추진력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Day9 / 98페이지)
처음엔 엔진오일 교환 경고등이 들어왔는지에 대한 간단한 질문만 하더니, 6천 마일을 넘게 운전했고 지금부터 시애틀까지 다시 6천 마일을 갈 예정이라 하니, 그제야 정색을 하며 차를 교환하는 게 좋겠다고 바로 차를 바꿔 준다. 동일한 차종인데, 색깔이 다르고 번호판도 애리조나에서 뉴저지로 바뀌었다. 차가 바뀌고 나니 이제 다시 출발하는 기분이다. 그동안은 서에서 동으로, 이제부터는 동에서 서로. (Day26 / 264페이지)
청교도들의 상륙은 원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수백만 동족들이 학살당하고, 땅을 빼앗기고, 문화와 전통을 말살당하게 되는 비극의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매년 추수감사절에 이들은 이곳에서 애도의 시간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플리머스시는 이들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이곳에 동판을 세운 것이다. 잘못에 대한 사과와 인정이라는 이들의 자세를 보며 이와 대비되는 한일관계가 떠올라 씁쓸하다. 유럽인들의 상륙으로 원주민들의 문명화가 시작되었고, 원주민 토지는 모두 합법적인 조약 체결을 통해 확보하였다는 식의 주장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Day26 / 272페이지)
같은 인디언들끼리 단결하지 못하고 미군의 편을 들어 갈라져 서로 싸우는 모습이 한때 이해되지 않았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이들 부족들이 서로를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간에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오랜 기간 적대적인 관계였다면, 이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접근일 수도 있겠다 싶다. 오래전에 동양을 방문한 유럽인이 조선인과 일본인을 같은 동양인으로 단순화해 접근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Day39 / 401페이지)
살아가면서 무언가에 관심이 생기고 열정이 생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열정에 한번 제대로 심취해 볼 수 있다는 것, 그건 큰 행운이 아닐까 한다. 나에게 그것은 인디언과 관련한 이야기였고, 글로 접하고 이해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살았던 곳, 살고 있는 곳을 직접 가 보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눈과 귀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Day41 / 421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