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또 거룩한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행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 은혜는 영원 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행동으로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_1부, 〈선행〉 중에서 (p.16)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랑은 기다림입니다. 즉 ‘기다려 주는 마음’입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여전히 문밖에서 우리의 문을 노크하시는 주님은 우리가 문을 열어 주길 기다리십니다. 사도 바울이 사랑을 ‘오래 참고’로 시작해서 ‘항상 견디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어쩌면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다림’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_1부, 〈기다림〉 중에서 (p.40)
하나님 아버지는 죄 없는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죄인인 척 돌아가게 하시고, 정작 죄인인 우리를 의인인 척 여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척’해 주시는 사랑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형제들인 척 살아갑니다. 어떤 ‘척’으로 살아가느냐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말해 줍니다.
_2부, 〈‘척’하는 삶〉 중에서 (p.114-115)
내가 목사로 있는 한, 내가 사장으로 있는 한, 내가 회사 직원으로 있는 한, 내가 과일 장사를 하는 한, 내가 경비원으로 있는 한, 내가 택시 기사로 일하는 한, 내가 전방의 병사로 불침번을 서는 한…하나님께서 만드신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시는 대로 사는 것(에베소서 2:10)을 느끼며 다짐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존재감입니다.
_3부, 〈존재감〉 중에서 (p.211)
기독교인들이 사회에서 지탄을 받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바로 ‘믿음 따로, 삶 따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끊임없이 자격지심(自激之心)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따로따로 사는 삶입니다. 교회에서의 삶, 가정에서의 삶, 직장에서의 삶이 따로따로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삶의 궤적을 그려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새 아침을 엽니다.
_4부, 〈따로따로 신앙〉 중에서 (p.263-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