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나한테 20년형이 뭐야? 이게 말이나 돼? 지금 이 순간에도 미쳐버릴 것만 같아. 피난 못 간 시민들 찾아가서 몇 번에 걸쳐 직접 당 혁명과업 선전·선동했다고 해서 나한테 그런 빨갱이 혐의를 뒤집어씌우다니⋯⋯ 이제 내 인내심의 한계점에 다다른 것 같아.”
한 번 치밀어 오른 노천명의 분노는 여간해서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29P)
o“나도 처음엔 몸부림을 쳤지. 그런데 임화 그 미친놈의 줄기찬 회유·협박에 끝내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어. 차라리 그때 목숨을 끊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오늘의 이 같은 치욕적인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당시 상황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어. 나 하나 죽는 건 괜찮은데, 인자한테까지 마수(魔手)가 뻗치더라고. 비록 내 배 속에서 낳아 기른 애는 아니지만, 그래서 그들의 줄기찬 강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 누구라도 그랬을 거야. 하늘이 너무나도 야속해. 왜? 왜? 우리 같이 무고한 사람들만 그들의 이념 싸움에서 희생양이 되어야 해? 정상 참작이라는 말도 있듯이, 진짜 골수빨갱이를 가려내는 작업이라면 몰라도…… 이건 누가 봐도 마녀사냥이야.”(30P)
o“내 이제 자네에 대한 응어리는 오뉴월 강물에 얼음 녹듯이 모두 풀어버렸네. 지나고 보니 다 부질없는 짓이었네. 그러니 내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잘 좀 돌봐주게나.”
그녀의 눈에서는 그간 꾹 참았던 한 맺힌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은혜(恩惠)는 땅에 새기고 한(恨)은 흐르는 강물에 새기라 했다. 한(恨)을 가슴에 안고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되 돌이킬 수 없는 병이 된다. 이학규는 이 방에 들어오기 전 이미 형님의 임종을 예견하고 있었다.(85P)
o“내가 이 씨 조선시대에서 살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 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을 거야. 그 단적인 예가 중종시대 유자광(柳子光)이었지. 허울만 좋은 양반들이 그를 얼마나 시기했겠어? 그를 간신으로 이미지화했던 것도 입만 살아있고 능력도 없는 양반들의 시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지.”(146P)
o“너는 묻는 게……주세죽 보단 못하지만 상당한 미인이었다고 그래. 게다가 상류층 출신이었고⋯⋯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딸‘박 나타샤’와 아들‘박 세르게이(1953년생)’를 두었는데, 박헌영이 처형된 후 지금까지 모두 행불이야. 박헌영이가 죽을 때 김일성에게 가족들만은 살려주라고 애원했다고 하던데……지금까지 오리무중이면 다 처형됐다고 봐야지?”(149P)
o“우리도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핵무장을 해야합네다. 우리가 그 핵무기로 같은 민족인 남조선 인민을 향해 사용할 수 있갔습네까? 중국은 지금 압록강 변에 특수군 20만 명을 배치해놓고 호시탐탐 북조선 침략 명분만 찾고 있습네다. 우리가 핵무장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 반드시 일본이든 중국으로부터 재침략을 받게 될 것입네다. 더 나아가 미제, 러시아 한테도……”(212P)